무협소설을 안 읽은지 10년이 넘는다. 평생 가장 즐겨읽은 장르인데, 어느새 전혀 관심없는 분야가 되었다니... 철이 든건지, 아니면 먹고사는 문제에 매달려서 그런지...
며칠전 네이버 검색에서 우연히 한국의 무협소설에 대한 글들을 읽게되어 나도 새삼 ‘나와 무협소설’의 긴 인연에 대해 기억을 되살리게 되었다.
아마도 10살무렵에서 40살까지 열심히 읽었으니까, 나와 무협지의 길고긴 30년의 인연의 시작은 초등학교 5학년때였다. 서울로 이사와 우리집보다 잘살고 있는 고모집에 명절마다 제사에 참석하러 갔는데, 그집만 가면 읽을 책들이 많았다. 삼국지(두꺼운 5권짜리 책을 읽고 또 읽었다. 내 인생관 형성에 엄청 큰 영향을 미친책), 군협지, 비호 등등....
문제는 군협지였다. 우연히 한권 읽어보았는데 무서운 흡인력으로 나를 끌여들었다. 69년무렵에는 대본소는 아직 없었고, 소장본으로 고급책이었다. 전 5권중 5권이 분실되었다. 5권의 최종 결말은 그로부터 거의 20년뒤 새로 출판된 이후에 비로소 읽게되었다. 소설의 맛을 알게 해준 책이었다. 독특한 개성, 탁월한 심리묘사는 당시만 해도 무협소설이 싸구려가 아니라 대단히 고급책이었다. 무공은 소설의 구성과 전개를 더욱 흥미롭게 하는 요소였고, 문학적 요소가 더 압도적이었다.
그뒤 중학교때 (70년대 초반)는 영등포사거리에 밤에 리어카를 끌고나와 가두대본소를 하는 곳에서 무협소설을 빌려보곤했다. 70년대후반들어서 만화방에 무협소설이 대본으로 진열되기 시작했다. 고등학교 3년동안 신간이 나오자마자 만화방에서 1차로 빌려 밤을세워 전질을 다 읽고 다음날 아침 충혈된 눈으로 책을 만화방에 돌려주고 등교하는 생활을 계속했다.
무협지를 계속 보게된 것은 내가 운동권이 되어 민주화운동과 노동운동을 15년가량 하게 된 것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운동권 생활 나는 특히 노동운동을 하느라 공장에 취직하는 시간도 많았다. 중간 중간 몸이 안좋아 장기간 휴양하는 기간도 있었다. (고문 후유증으로). 87년 이전만해도 조직으로 바쁠 일은 거의 없었다. 활동가들은 개별적으로 자기 거점을 확보하는 생활차원의 움직임을 했을 뿐이었다. 대부분의 운동권들이 당시에 백수생활을 했다고 보면 된다. 수배중이든 여러이유로 짜투리 시간이 많이 나니 당시만해도 pc방이나 다른 오락이 있을 수 없고, 시간 때우는데 제일 좋은 것이 대형만화방이었다. 대형tv, 만화, 소설, 무협소설, 영화프로 등을 해주니 1000원정도 내면 하루를 보내는 오락실이었다.
90년까지는 국내 무협소설을 많이 읽은 편이었다. 그런데 80년대 10년동안 내 독서에 가장 큰 충격을 준 소설가는 ‘서효원’이라는 작가였다. 최근에 한국 무협소설연대기를 정리한 글을 보니, 최초에는 와룡생 번역시대, 그 다음에는 국내작가들에 의한 와룡생 이름빌려 출간하기, 그리고 80년대 들어 국내창작작가 1세대-서효원, 야설록, 검궁인, 사마달....였다고 한다. 2세대는 용대운... 등 90년대 중반이후, 그리고 2000년 이후 최근의 신무협을 3세대라고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는 1세대까지는 매우 열렬한 애독자였고, 2세대 작가의 작품부터는 점차로 흥미를 잃기시작해, 요즘 3세대 퓨젼, 판타지 등등 이런 책들은 아예 거들떠보지도 않게 되었다.
서효원의 책을 처음 접했을 때의 충격은 지금도 생생하다. 80년대초 어느날 여느때처럼 신간무협소설을 들고 읽는데, 알다시피 보통의 무협소설은 붕어빵과 똑같았다. 천편일률적 스토리에 별 긴장감과 구성미가 없는 것이 대부분이었다. 억! 그런데, 이 책은 달랐다. 시작하는 순간 끝까지 책을 놓을 수가 없었다. 처음 보는 스피디한 문체, 반전을 거듭하는 추리소설 기법, 주인공의 독특한 개성, 기상천외의 고통과 좌절 등..... 마치 한국 의 추리소설이 김성종 이전과 이후가 완전히 달라졌듯이 서효원 이전과 이후의 한국무협도 완전히 달라졌다.
한번 읽고는 완전히 팬이 되어 버렸다. 혈교, 실명마제, ..... 서효원 무협도 상당히 도식적인 요소가 있다. 그래서 자기복제적 요소가 강하다고 비판하는 사람도 있는 모양이다. 그렇지만 서효원 무협은 그 독창성과 천재성으로 말미암아 첫손꼽지 않을 수 없다. 한국무협이 중국무협에서 완전히 독립한 새로운 금자탑을 쌓았다고 본다.
보통 1달에 1질, 나중에는 2질정도 나왔는데, ‘서효원 거연(徐孝源-巨然)이라는 공저로 나왔다. 책을 읽으면서 두가지 의문: 서효원이라는 사람자체에 대한 의문, 어떻게 이렇게 멋진 소설을 쓰는가 그 필력에 감탄했고, 둘째, 거연은 누군가 했다.
저자 소개를 통해 나보다 2살어린 59년생이라는 것과 성균관대 산업심리학과 졸업생이라는 것만 알게 되었다. 나보다 어린데, 나는 평생 무협소설을 읽는 소비자에 머물렀는데, 이 친구는 무협세계를 뒤흔드는 筆魔가 되다니.... 감탄하곤 감탄했다.
지금도 후회하는 것은 출판사에 알아봐서 한번이라도 생전의 서효원을 만났으면 어땠을까하는 것이다. 당시만해도 중국은 죽의 장막 너머 중공땅이었다. 아마도 해방이후 출생자중 중국대륙을 직접 가본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었다. 그런데도 중국천하의 지리와 명산, 9대문파를 묘사하는 글 심지어 서역, 대막, 천축, 까지 넘나드는 그 웅대한 스케일을 순전히 머릿속에서 짜냈다니...
내가 서효원의 소식을 알게된 것은 그가 죽은 후 생전의 그의 작품이 재출간되면서, 비로소 그가 대학시절 위암선고를 받았고, 10여년 암과 싸우면서 작품을 썼다는 것을 알게되었다. 어쩌면 그는 그의 소설속의 주인공보다 더 엄혹한 시련과 병마를 겪으면서 초인적 작가생활을 했을지도 모른다. 그의 천재성으로 미루어보아, 만약 무협소설 창작의 생태계가 좀더 제도권의 지원과 양육을 받았다면 그가 중국의 김용과 한국의 김성종을 융합한 뛰어난 작품을 충분히 써고도 남을 작가라고 나는 확신한다.
내 인생에 무협소설이 미친 영향은 단순히 소일꺼리, 짜투리 시간때우기를 넘어선다. 무협소설이 황당하고 유치하지만, 단하나 배울 점은 있다. 특히 초기 무협에 갈수록 ‘의협(義俠)’을 행하는 협객의 개념이 뚜렷하다. 이 의협심과 협객행은 나의 평생을 지배해온 인생관의 핵심 컨셉이었다. 민주화운동을 하든, 노동운동을 하든, 정치개혁운동을 하든 진보나 보수, 좌냐 우냐보다는 의협심을 가진 협객이라는 컨셉을 나의 아이덴티티로 삼았다.
2006년 5월 공기업의 임원직을 퇴임하고 나이 50에 이르러 45일간의 중국내륙 배낭여행을 감행한 것도 어릴적 머릿속에 각인된 중세 중국의 무림세계에 대한 동경이었을 것이다.
삼국지와 구대문파의 소재, 거대한 중국제국의 역사적 맥락을 찾아서 중원을 방랑했던 것이다. 화산, 황산, 숭산을 다녀왔다. 나머지 구대문파도 반드시 다녀올 생각이다.
서효원이 세상을 떠난지도 18년이 되어간다. 그의 명복을 빈다. 시한부생명과 잔혹한 병마의 고통속에서도 자기분야에서 일가를 이룬 그에게 다시한번 존경의 염을 표한다. 나도 어느듯 50이넘었다. 그를 추모하면서 문득 내인생은 어디쯤 흘러가고 있나 반추해본다.



